'세상에 독하게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아무의 감상평은 한마디로 "일본 꼰대의 헛소리"다.


그나마 읽을만했던 부분은 54~56p


… 남녀 관계는 거짓말이 기본이다. 그리고 거짓말인 게 들통 날 것 같으면 돈으로 얼버무려 넘어간다. 결코 거짓말과 돈만 갖고 거의 대부분 해결되는 것이다.

[구름다리 이론] 

 곧장 플라토닉 러브니 뭐니 하는데 난 이걸 도통 이해 못 하겠다. 성적인 것을 제거한 남녀관계라니, 대체 무슨 소린가? 그냥 노망이 들어서 섹스를 어떻게 하는 건지 잊어버린 게 아닐까. 나이를 먹을 대로 먹어 《들국화의 무덤》▶ 열다섯 살 소년과 열세 살 소녀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이토 사치오의 소설. 드라마와 영화, 연극 등으로도 만들어졌다. 같은 짓을 하다니,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게 더 변태다.

 하지만 섹스를 모르던 초등학생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보면 내게도 순수하다고 할 수 있는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에는 상대방 가까이 가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마 5, 6학년 때였나. 같은 반에 똑똑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동네 과자가게 딸로, 몸이 약해서 3학년 중간에 들어왔는데, 누구보다도 공부를 잘했다. 머리가 좋다는 것만으로 예쁘게 보이던 시절이었다. 남자애들은 모두 그 애를 좋아했고, 어떻게 해서든 옆에 다가가려 했다. 자리 바꾸기라도 하는 날이면 대소동이 일어난다. 하지만 옆에 앉게 되면 떨려서 제대로 말도 못하는 것이다.

 그 아이의 집이 좌자가게여서 나도 자주 들렀다. 우리 집 근처에도 과자가게가 많은데 일부러 거기까지 사러 갔다. 가게 아저씨도 나를 잘 알았다. "이놈도 또 우리 딸내미 보러 왔구먼." 하면서 절대로 딸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다.

 내게는 그게 첫사랑이다. 섹스를 알고 난 뒤에 생각해보면 그런 관계는 참 희한하다 싶다. 하지만 그 두근거리는 느낌은 아직까지도 마찬가지다. 예쁜 언니를 보면 여전히 가슴이 두근두근 뛴다.

 재미있는 건, 어른이 되어가면서 보기만 해도 두근거리는 예쁜 언니들보다도 그저 평범한 여자가 더 좋아진다는 것이다. 그런 여자에게는 저도 모르게 매몰차게 굴기도 하지만, 어느 쪽이 좋은지 말하라면 역시 평범한 쪽이 더 좋다.

 남자라면 모두 그렇지 않을까. 한창 끓어오를 나이인 열일곱, 열여덟 때라 해도 1인자인 아름다운 언니는 어쩐지 마돈나 가아서 숭배하기만 하고 손을 대지 못한다. 하지만 2인자, 3인자인 여자들과는 끈적끈적한 관계를 맺고는 한다. 그럼 2인자, 3인자를 볼 때는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느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다. 어떻게 벗길지, 어떻게 잘지 하는 여러가지 생각들로 두근거리기도 한다.

 역시 연애에는 그런 두근거리는 느낌이 빠질 수가 없다. 젊은 남녀가 데이트하면서 곧잘 롤러코스터를 타거나 스릴 넘치는 영화를 보러 가지 않나. 이것도 그럴 때 드는 공포심과 연애의 두근거림이 비슷하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구름다리처럼 불안정한 곳에서 만나면 첫눈에 반하기 쉽다는 '구른다리 이론'이라는 것도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보면 옛날부터 언제 죽을지 모르는 때 벌이는 연애만큼 불타오르는 것도 없었다. 그래서 <사랑과 죽음을 바라보며>나 <붉은 의혹> 같은 것들이 히트하곤 했다.

 마누라한테 바람피우다 들킬 위기에 놓여 두근거릴 때가 가장 흥분된다는 사람도 있다. 이건 의외로 진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슬프게도 지금의 일본 사회를 보면, 그런 남녀 사이의 두근거리는 느낌이 점점 사라져가는 기분이 든다.

 옛날에는 어떤 여자를 만나더라도 몇 번 차를 마시고 밥을 먹고, 입 맞추고 뭐 하고, 이런 식으로 서서히 단계를 밟아가서 드디어 잠자리에 다다랐다. 그래서 그 단계 하나하나마다 두근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처음 만난 여자가 선뜻 침대에까지 따라온다. 인사 대신이랄까, 거의 악수와 마찬가지다. 두근거림이고 재미고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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