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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권력 승계에 대해 알아야 할 사실 4가지

만에 하나 긴급 상황이 발생해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을 통치할 수 없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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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은BBC 코리아

 

Image copyrightLINH PHAM이미지 캡션만약 긴급 상황이 발생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통치할 수 없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건강 상태를 둘러싸고 각종 추측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1일 이후 북한의 최대 명절인 김일성 주석의 생일(태양절)에도 불참한 뒤 18일째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혼자 일어서거나 걷지 못하는 상태인 건 분명하다'는 추측에서부터 건강 이상 가능성은 0.0001% 이하라는 주장까지 연일 새로운 가능성이 제기된다.

아직 집권 9년 차인 김 위원장(37)의 권력 승계를 논하기는 이르지만, 심혈관계 질환이라는 가족력이 있고, 고도 비만이며 흡연을 즐기기 때문에 김 위원장을 둘러싼 건강 이상설은 지속해서 나오고 있다.

만에 하나 긴급 상황이 발생해 김 위원장이 북한을 통치할 수 없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김 위원장은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11년 12월 17일 사망한 후 북한 3대 세습 지도자가 됐다. 국가 지도자로는 세계 최연소다.

당시 과정을 살펴보며 북한의 권력 승계에 대한 사실 네 가지를 정리했다.

Image copyrightCARL COURT이미지 캡션'백두혈통'은 북한의 후계자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1. 혈통, 혈통, 혈통

이른바 '백두혈통'은 북한의 후계자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이는 북한이 김일성 주석의 항일 투쟁의 배경이라고 주장하는 '백두산'을 차용해 만든 개념으로, 이를 통해 북한은 김씨 일가를 우상화하며 세습 정권의 정통성을 강조해왔다. 후계자 역시 이 백두혈통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일 수밖에 없다.

"후계자 선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김일성가여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미국 정부, 북한전문매체 NK News등에서 근무한 이민영(영문명 Rachel Minyoung Lee) 북한 전문가는 BBC 코리아에 말했다.

북한전문가 고미 요지 도쿄신문 편집위원과 전 북한 고위간부 등의 증언을 종합하면, 김정일은 2008년 뇌졸중에서 회복한 후 비정기적으로 '가족회의'를 열고 후계자 문제를 논의했다. 

이 대목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후계자 문제가 '가족의 일'이라는 것. 장남 김정남이 아닌 김정은을 후계자로 결정한 것은 아버지 김정일과 고모부이자 당시 2인자이던 장성택 전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위원장은 부인 리설주와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고 있는 것으로 한국 정부 당국은 보고 있다. 첫째는 2010년생 아들, 둘째는 2013년생 딸, 그리고 셋째는 2017년 출생했으나 성별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한편 일본의 요미우리는 긴급상황 발생 시, 백두혈통 세습을 이어가기 위해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최고지도자 권한을 대신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미일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한 바 있다.

Image copyrightAFP PHOTO / KCNA VIA KNS이미지 캡션김 위원장은 부인 리설주와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고 있는 것으로 정부 당국은 보고 있다

북한연구소 정영태 이사는 "후계자는 김여정이 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BBC 코리아에 말했다.

그는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결정적"이라며 "'백두혈통'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부장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덧붙였다.

"김일성 시대에 김정일을 후계자로 내정하며 김정일이 조직지도부장 자리를 맡으며 실질적 통치를 했다. 당시 스스로를 '당 중앙'이라고 했다. 지금 상황은 이때와 상당한 유사성을 띈다. 김정은 시대는 군이 중심이었던 김정일 시대보다 당이 중심이었던 김일성 시대와 더 유사하다. 당을 장악하면 실질적으로 장악하는 구도이고 조직지도부 (부장직)은 당의 중앙인 셈이다."

이민영 전문가는 후계자 선정까지는 아니더라도 긴급 사태를 대비한 계획은 있을 것이라고 봤다.

"후계자를 선정했거나 승계 계획이 있다고 지금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통치할 수 없을 경우를 대비한 긴급사태대비는 있다고 보여진다."

 

2. 짧아진 세습 프로세스

김정일이 후계자로 김정은을 결정한 것은 2008년 10~11월 즈음으로 전해진다. 이때부터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의 현지 지도에 동행하기 시작하며 이른바 '후계자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2009년 1월 김정일은 리제강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김정은을 자신의 후계자로 결정했다고 통보했고, 이 사실은 같은 해 5월 있었던 2차 핵실험 직후 당·군·정에 공식 통보됐다. 해외 공관에도 통보됐지만 대외적으로 보안을 유지하도록 지시했다.

Image copyright조선중앙통신화면 캡처이미지 캡션김정일은 김정은을 후계자로 결정한 후 현지 지도에 데리고 다닌 것으로 알려진다 

아버지 김정일이 김정은에게 2009년 초 맡긴 첫 업무는 국가안전보위부 보고서 체크였다고 북한전문가 고미 요지 도쿄신문 편집위원은 저서에 썼다. 그는 이를 두고 국가통치의 핵심인 보위부의 활동을 파악시킬 의중이었다고 해석했다.

김정은은 2010년 9월 조선노동당 전당대회에서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얼굴을 드러냈다. 김정은이 전격 등장한지 1년이 조금 지난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은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후계자로 공식석상에 등장한 지 약 1년 2개월 후 권력을 넘겨받게 된 것이다.

김정일에 비해 김정은은 후계자 내정 기간이 짧았다. 김정일은 1974년 2월 김일성 후계자로 추대됐고, 김일성 사망(1994년 7월 8일) 약 11년 전부터 국가주석이 갖고 있던 직위인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을 넘겨받아 사실상 '김일성 대행'을 맡아왔다.

도지인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는 BBC 코리아에 북한은 이미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권력이 승계되는 과정에서 "(비교적) 짧은 시간에 후계자 검증 단계를 진행한 경험이 있다"며 "당시 세습 과정은 비교적 안정적이었고 제도화됐다. 만약 또 이루어진다면 비슷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력 승계 시 국가적 혼란이나 내부 동요가 있을지에 대해선 김정은 집권 과정을 되짚어 볼 때 가능성이 적다고 내다봤다.

도 교수는 "후계자가 누가 되든지 권력 승계 과정은 당시와 크게 다를 거 같지 않다"고 말했다.

 

3. 사망에서 발표까지 이틀 걸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주체100(2011)년 12월 17일 8시 30분에 현지지도의 길에서 급병으로 서거하시였다는 것을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알린다."

2011년 12월 19일 낮 12시 검은 상복을 입은 아나운서가 북한 조선중앙TV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사망에서 발표까지는 51시간 30분이 걸렸다. 1994년 김일성 사망 당시 34시간에 비하면 17시간 30분이 더 걸려 당시 많은 의혹이 제기됐다. 김 위원장의 사망 발표가 불러올 국가적 혼란이나 내부 동요를 차단하려고 시간이 필요했다는 분석, 당시 지지기반이 약했던 후계자 김정은을 위해 권력승계에 대한 논의를 위한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란 분석 등이 있었다.

Image copyright조선중앙통신 화면 캡처이미지 캡션2011년 북한 조선중앙TV 아나운서가 검은 상복을 입은 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과로로 열차에서 사망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특히 북한 매체는 김정일 사망 발표에서 "겹쌓인 정신 육체적 과로로 지난 17일 야전열차 안에서 중증급성 심근경색이 발생되고 심한 심장성 쇼크가 합병됐다"며 "발병 즉시 모든 구급치료 대책을 세웠으나 17일 오전 8시 30분에 서거했고, 18일 진행된 병리해부 검사에서 질병의 진단이 완전히 확정됐다"고 강조했다. 

이는 사망원인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당시 전문가들은 봤다. 김 주석 사망 당시에도 북한은 사망 다음 날 부검을 한 바 있다.

한국 정보 당국은 김정일 사망 소식을 조선중앙통신 특별방송 이전까지 몰랐으며, 미국 측 역시 보도를 통해 사망 사실을 알게 됐다고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NK뉴스'의 채드 오캐럴은 썼다

 

4. 우상화 작업과 유훈 통치

북한 당국은 김정은이 후계자로 내정된 후 우상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며 첫 찬양가 '발걸음'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보급했다. 

태영호 전 주영 북한 공사는 당시 상황에 대해 "'김대장'이 후계자가 된다는 것이 명백했지만 노래를 부르는 우리조차 김대장 또는 대장동지가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고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에 썼다. 이름과 나이 등 개인 신상에 대해 모르는 채 북한 주민들은 이 노래를 불렀다.

집권 초기 북한의 승계자는 전통적으로 선대의 우상화 작업에 노력을 기울였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김일성-김정일 부자 동상을 세우는 등 선대 우상화 작업을 우선적으로 추진했다. 북한 당국도 매년 김정일 사망일이 돌아오면 김정일 추모 분위기를 강화하며 동시에 김정은을 띄우는 작업에 공을 들였다.

김정은의 경우 한국 정보 당국은 김정은의 유학 시절 여권 등을 근거로 1984년생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의 우상화 작업의 일환으로 1912년생인 김일성과 1942년생인 김정일의 출생연도 끝자리를 맞춰 1982년생이라고 선전해 왔다.

Image copyrightPATRICK SEMANSKY - POOL /GETTY IMAGES이미지 캡션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은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을 맡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는 후계자를 의미하는 '당중앙'과 유사하다고 보고 있다

한편, '유훈 통치'를 앞세워 승계 정당성을 마련하거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선대를 외적으로 따라 하며 후광을 빌리는 것도 북한 특유의 승계 프로세스다.

고난의 행군 시기였던 1994년 집권한 김정일은 집권 초기 이른바 '유훈 통치'를 내세워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표어로 이 시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2011년 집권한 김정은도 집권 초기 일부러 살을 찌우고 중절모를 쓴 채 열차 여행을 하며 외면적으로 '김일성 따라 하기'를 했다.

정영태 이사는 "그 당시에 김정은은 어린 이미지가 있었다. 빨리 노련하고 노숙한 모습을 보이고자 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2014년 발목 수술 이후 김 위원장이 지팡이를 짚은 모습이 북한 매체에 나온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라고 지적했다.

정 소장은 "지팡이를 짚은 것이 김일성과 닮았다. 북한에는 이런 상징성이 중요하고 일종의 수령의 정통성을 강화하는 수단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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