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훗날 누군가는 생각했다.

'마음껏 먹어도 살 찌지 않는 음식이 나왔으면….'

곧 그런 음식과 약이 개발되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먹는 것에 흥미를 잃었다.


먼 훗날 누군가는 생각했다.

'나 대신 공부해주는 로봇이 있었으면….'

곧 그런 로봇이 만들어졌고

사람들은 공부를 멀리하게 되었다.


아주 먼 훗날 누군가는 생각했다.

'나 대신 출근하는 로봇이 있었으면….'

곧 그런 로봇이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주 먼 훗날 누군가는 생각했다.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곧 수많은 신약이 개발돼 대개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었다.

그러자 사람들의 관심은 몸에서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또 먼 훗날

거의 모든 사람이 생각했다.

'영원히 살았으면….'

그것이 어렵지 않게 된 어느 날 이후….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영원을 꿈꾸던 이들이 죽어가던 때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사람들은 스스로 죽었다.


그때…

몇 명의 과학자는 생각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우리는 어째서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고 먹으려 하지 않고 살려 하지 않게 된 것일까.


그들은 또 고민했다.

물으면 모든 답이 나오는 세상.

내가 알아야 할 필요가 없는 세상.

통장에서 돈을 꺼내ㅐ 쓰듯 지식 또한 AI 저장고에서 꺼내 쓰는 세상.

우린 어쩌면 가장 발달된 사회 속에서 가장 소외된 존재는 아닐까.

우리가 만든 합리적 시스템에서 가장 불합리한 존재가 돼버린 것은 아닐까….


그들은 알아냈다.

점점 인간은 텅 비어버린 존재가 되어간다는 것을.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놓쳐버린 것은… 놓아버린 것은… 무엇일까?

과연 우리는 잘 살고 있는 것인가….


고심에 빠져있던 한 과학자는 20. 21세기의 영상을 보았다.

전쟁과 테러, 갖가지 갈등과 이기심이 들끓는 혼돈의 도가니였다. 익히 보아온 내용.

지금의 시스템은 그 시대를 반성하며 만들어졌으니 이 영상들은 자주 봐온 것이었다.


하지만 고민에 빠진 과학자는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

어째서 이 시대에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는가?

어째서 이 시대에 인간의 지적 세계는 팽창했는가?


집으로 돌아간 과학자는 홀로그램 안의 아빠와 놀고 있는 어린 아들을 보며 잊고 있던 21세기 영상 한 편을 떠올렸다.

재난으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이었다. 죽음을 앞둔 아이들은 바삐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아빠, 엄마. 미안해." 

"미안해." 

"그동안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용서해 줘…." 

"그리고… 사랑해…."


행복했던

즐거웠던

감사했던

고마웠던

슬퍼했던

후회했던

미안했던


혹은…

사랑했던 기억까지 맡겨뒀던 사람들은


서서히…

멸종의 길에 들어서고 있었다는 것을…


그는 알게 되었다.



프롤로그 / ORIGIN 오리진 세상 모든 것의 기원 001 보온 - 윤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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